팬데믹 시대, 극장과 독립영화는 점점 어려운 존재가 되어갑니다. 그래도 우리는 독립영화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인디즈 큐가 메일함으로 단편영화를 배달해드립니다. 이름하여 인디즈 큐!레이션💌
아래의 관람 버튼을 통해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단, 3월 10일 목요일 정오(오후 12시)까지만 관람이 가능합니다!
오늘의 인디즈 큐!레이션, 변영주 감독의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지금은 2022년, 10년 전은 2012년, 20년 전도 2002년. 19로 시작했던 연도는 점점 멀어져가는데요. 2008년, 뉴 밀레니엄의 기대를 품고 시작한 21세기가 9년이 지났을 무렵은 어땠을까요?😯
변영주 감독은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지 십 년이 다 되어가도 새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알 길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떠들썩한 천년만의 변화였는데, 우리의 세상은 대단히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럴 때, 먼저 살아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에요. 그는 한국 사회의 굳은 지층을 유연하게 뚫고 들어갔던 박완서 작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청하는데요.
길게 말하지 않을게요. 그저 보고, 느껴주세요💥 그리운 박완서 작가의 얼굴과 말들, 그리고 변영주 감독의 표정과 몸짓이 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그대로 다가옵니다. 그후 14년간 변영주 감독이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를 생각하면 조금 더 힘이 나는데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들려줬으니 우리도 이야기를 준비해볼까요?💬
1️⃣ 영화 본편을 먼저 보고 나면 여러가지 생각이 몰려올 거예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그 뒤 인디즈의 리뷰를 읽으면서 나의 리뷰도 완성해볼까요?
2️⃣ 리뷰에는 줄거리가 간략하게 들어가 있어 이해를 돕고 풍부한 시선을 제공합니다. 보다 풍부한 시선으로 영화를 보고 싶다면 리뷰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것도 추천!
인디즈 큐!레이션 06.
굳이 말하기, 증언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
감독 변영주
출연 박완서
시놉시스 2008년, 새로운 세기가 시작 된지 벌써 9년이 지난 지금. ‘작가 박완서는 20세기를 어떻게 기억하며, 형상화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역사, 그리고 예술 방법론의 고민으로 시작하게 된 변영주 감독의 이 다큐멘터리는 아직도 20세기의 어느 언저리에서 절절매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감독에게 20세기를 해석해주는 최고의 교과서였던 박완서의 소설 속에서 5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배경이 되었던 서울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며 회상한다. 개성이 고향인 작가 박완서가 한국전쟁과 함께 서울로 와서 생각하는 2000년대의 이미지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 혹은 그녀의 이미지와 충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박완서 소설에서 느끼는 감독의 서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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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본편까지 인디즈 큐!레이션 컨텐츠입니다.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번 레터의 주소를 공유해주세요 :D
시대는불현듯지나간다. 세월은다지나서야명명되며찰나는그렇게빼곡해진다. 어떤세계를살아왔는지, 무엇에그렇게갈등했는지. 그것이단지 '나'의 일이 아니라 어떻게모두의일이됐는지혹은, 모두와관계없이 ‘나’ 는어떻게 고립됐는지에대해서. 많은말과글을거쳐야비로소의미를얻는다. 나의 21세기는어떠한가. 과거로부터최신의반성을업데이트한지금의시간은어떠한가. 흥미롭게새로움을유희하고지난한시간은뒤로했다. 나는과거가없는 것처럼오늘에던져졌다. <20세기를기억하는슬기롭고지혜로운방법>은나의 21세기는대체어느것과연결되고있는지에대해이야기한다. 한뼘의시간위에서목격한바를떠들었던여성들에대해말한다.
다큐 속 박완서 작가는 “증언의 욕구”가 있었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이걸 글로 쓰리라”라는 다짐이 당시를 버티게했다고 설명한다.변영주감독은창작과 삶의 욕구가동일한방향성을지닌다고설명한다. ‘위안부’ 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인이용수할머니는용기있는증언을보여준다. 돌이켜보면뭉뚱그려진 지난 날의일은결국증언의집합이다. 증언은 ‘굳이말하는것’이지만 절실한것이되기도한다. ‘굳이말하기’를선택하며지난시간에이름을붙이는 것은누군가의의지였다. 다큐는과거는증언으로구성되고있음을말한다.
동시에 지금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는 말들을 떠올리게 된다. 내 옆에 나돌아다니는 무수한 말들은 어떻게 집합되고 또 흩어질지, 아직은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증언이라는 행위 자체가 곧 의미화의 첫 발딛음을 이해한다. 나는 지금을 살지만 한편으론 지금 시대의 모든 일을 다 알진 못한다. '코로나'라는 시대성은 너무나 익숙해졌고 새삼스럽다. 세계 어디에선 전쟁이 일어나지만 나는 지하철을 탄다. 각기 다른 시대정신을 말하고 동시에 모두가 시대에 참여하진 않는다. 하지만 20세기는 분명 지나갔고 “다른 목소리”일지라도 이름이 붙여졌다. 일상에서 시대와 증언, 기억과 역사는 체감되기 어렵지만 결국 개인의 목소리로 돌아갔다. 똑똑히 그들을 대면했고 그 시간들이 내게 돌아왔다. 나는 긴 시간 속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었던 사람을 봤고 그들은 내게 말을 던졌다. 이용수 할머니는 여전히 목소리를 낸다. 박완서 작가의 말과 글은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증언이 던진 힘은 그렇게 내 주변에 남아 있다. 나는 다시 이 기억들을 묻고 살아가겠지만 동시에 나는 여전한 증언자다. 증언, “굳이 말하기”는 그렇게 지금을 만들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