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을 구성하는 뼈의 개수는 총 206개라는 사실, 님은 알고 계셨나요? 신생아는 무려 450개의 뼈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점차 커가며 뼈들이 서로 붙기 시작하면서 그 개수는 206개로 줄어들게 된다지요. 붙은 뼈가 죽을 때까지 몸 안 구석구석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생각하면, 뼈의 시간도 나의 시간과 똑같이 흘러간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민간인이 집단으로 학살된 사건 장소 곁에서 유해들을 발굴하는 '시민 발굴단'의 묵묵한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206: 사라지지 않는〉은 허철녕 감독의 신작입니다. 세운상가(〈명소〉), 재개발(〈홍역괴물〉, 〈옥화의 집〉), 밀양 송전탑(〈밀양, 반가운 손님〉, 〈말해의 사계절〉) 등 사회 곳곳의 면면을 카메라에 줄곧 담아낸 허철녕 감독의 뚝심과 마음이 유독 돋보이는 작품이지요.
유골에 새겨진 과거의 흔적을 현재에 끄집어내어 가족에게 되돌려주려는 시민 발굴단의 뒷모습을 살피다 보면, 뼈에 새겨진 진실은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진실을 향해 파고 파고 또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져왔어요. 인디즈의 글과 함께, 광주에서의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영화 〈김군〉까지 함께 만나보세요.
발굴, 제대로 잠들 수 있도록
〈206: 사라지지 않는〉
적막 속 땅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 듯 보이는 사람들의 손에는 낯설지 않은 도구들이 들려 있다. 플라스틱 쓰레받기와 호미 그리고 먼지털이 붓.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던 사람들은 흙을 옮겨 담고 나뭇가지와 뼈를 분간하다 이내 입을 연다. 그게 아니지, 봐. 나뭇가지잖아. 이건 고무신이 아니라 여자 구두 같은데. 아주 짧은 순간에 과거의 흔적은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의 입안으로 접속해 사실이 된다.
과거를 길어 올려 자명한 사실로 두어야 하는 이유는 민간인 학살 사건은 왜곡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6: 사라지지 않는〉은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공동조사단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기억과 호명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유족들은 억울하고도 터무니없는 죽음 앞에 침묵한 채, 당신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기억해 왔다. 낙엽이 잔뜩 깔린 뒷산의 바위에 앉은 유족은 그곳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봉분이 가장 넓다’ 말하며 위안 삼는다. (후략)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765,000kV의 거대한 송전탑과 맞서 싸운 김말해 할머니 투쟁의 시작은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국가에 의해 은폐된, 민간인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차별하게 학살당한 사건. 김말해 할머니와 또 다른 김말해'들'은 이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피해 규모도, 희생자 수도 알 수 없는 상황. 한국전쟁 정전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시간은 멈춰있다. 그리고 국가 차원의 유해 발굴을 주도하던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되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조사단을 꾸려 그들을 찾아 나선다. "직업도, 배경도 다른 우리의 공통된 목표는 오직 하나. 인간을 구성하는 206개의 뼈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국가가 은폐한 진실을 찾아 나선 시민 발굴단의 기록.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숫자가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뼈의 개수 206. 누군가에겐 생소한 숫자일 테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삶의 출발점이다. 70여 년 전, 국가에 의한 학살로 불에 타고 땅에 묻혀야 했던 민중들. 그리고 이들을 되찾아야 할 책임을 방기한 국가 대신 직접 땅을 파헤치는 지금의 시민들. 〈206: 사라지지 않는〉은 바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영화는 시민 발굴단이 거대한 흙더미를 들어내고 발견된 유골들을 가지런히 놓는 과정을 조용히 함께한다. 유골의 흙을 털어 내는 동안 살아생전의 충치와 흡연 여부 등에 관한 크고 작은 사연부터 불에 탄 흔적이라는 국가적 학살 잔상까지 함께 소환된다. 이때 유골이 묻힌 터는 지난 참상의 풍경이자 지금 시민 활동가들의 무대이다. 그리고 이 둘은 시간이 지남에도 변하지 않는 국가 폭력의 그늘 아래 결속하여 제시된다. 한편 이들 이야기가 연장된 곳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존재한다. 영화의 초반부터 등장하는 김말해 할머니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가인 김말해 할머니는 이 영화의 주된 비극인 보도연맹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허철녕 감독은 이전 작품 〈말해의 사계절〉을 통해 김말해 할머니의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선 적이 있다. 이번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과 함께 마찬가지로 〈말해의 사계절〉을 감상하면 어떨까. 김말해 할머니의 성장 다큐멘터리인 〈말해의 사계절〉에서 우리는 국가 폭력에 당당히 맞선 한 명의 영웅과 함께할 수 있다. 온갖 형태의 모순과 아픔에 종종 무너지는 이 시기, 김말해 할머니로부터 용기와 희망을 전달받아 보자.
인디즈 김채운
〈말해의 사계절〉
감독 허철녕|107분|다큐멘터리
감나무 밭이 골짜기를 타고 지천에 드리워진 밀양시 도곡마을에는 여든 여덟살의 김말해가 살고 있다. 말해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일본의 보급대 강제징용을 피해 지금의 도곡마을로 시집을 온다. 1945년 뜻밖의 해방이 찾아오고 앞으로 좋은 일들만 있을 것이란 기대가 도곡마을에도 가득했다. 그러나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폭력의 그림자가 서서히 말해에게 드리우기 시작한다.
입은 거짓말을 해도 우리의 뼈는 거짓을 숨길 수가 없죠. 공동조사단이 발굴해내는 뼈에 담긴 역사처럼,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진실에 관한 것들은 아무리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노릇입니다. 〈206: 사라지지 않는〉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로 독립다큐멘터리 〈김군〉을 소개합니다. 진실에 대해 과거에 경험한 것들을 생생히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시민 발굴단의 묵묵한 뒷모습과 꽤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김군〉
감독 강상우│85분│다큐멘터리│2018
1980년 5월, 광주 도심 곳곳에서 포착된 한 남자. 군용 트럭 위 군모를 쓰고 무기를 든 매서운 눈매.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그를 북한특수군 ‘제1광수’로 명명하고, 누군가는 그를 한동네에 살았던 ‘김군’이라고 기억해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