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24년에도 인디즈 큐는 다양한 독립영화 소식을 매주 전해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힘찬 손길로 올해의 첫 번째 편지를 보내 보아요.

님은 새해 계획, 세우셨나요? 저는 올 한 해 제 책상만큼은 깨끗하게 사용하리라.. 다짐했어요. 책상에서 먹은 과자 부스러기가 키보드 곳곳에 들어가는걸 생각하면.. 😫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잖아요. 쓰레기 치우는 김에 겸사겸사 안 쓰는 물건들을 치우는 것도 좋더라고요. 책상을 정리하다 보면 사놓고 한 번도 안 썼던 물품들, 아니면 버릴 거라 했는데 여태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쉽게 발견하기 마련이지요. 간혹 이 물건은 언제 샀더라.. 생각에 잠기면서 정리인지 추억여행인지 모를 시간에 흠뻑 빠지기도 하는데요. 😏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는 한 가족이 정리 정돈을 하다가 '교토에서 온 편지'를 발견하고는 옛 생각에 잠겨 문밖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산의 영도에서 살고 있는 '화자(차미경)'에게는 (으레 우리 어른들의 집이 그렇듯) 버리지 못한 각종 잡동사니가 처치 곤란 수준으로 남아 있는데요. 둘째 딸 '혜영(한선화)'이 그 속에서 오래전 엄마에게 전해진, 일본어로 적힌 옛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 편지를 계기로 가족들은 엄마가 못다 이룬 소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게 되지요.

종종 화목하고 가끔은 불행한 가족의 시간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편지가 주는 삶의 활력, 인디즈 큐 독자분들이라면 어렴풋이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 핑계 삼아 새로운 마음을 먹기 좋은 이번 주에 여러분께 잔잔한 새 기운을 담은 〈교토에서 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독거노인들을 위해 음식을 조리해 도시락 배달을 나가고, 일본식 주택으로 돌아오는 화자의 일과에 영도의 풍경이 담겨 있다. 부산 내에서 고령 인구가 제일 많고,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장 가까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의 이주가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는 영도는 그 자체로 근현대의 역동을 간직한 지역이다. 그곳에 사는 화자는 유독 영도와 닮았다.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일본과 한국 그 어디에서도 출신을 긍정받지 못하고 어머니와 애꿎은 생이별을 해야 했으면서도 입 밖에 설움 한번 토로하지 못한 화자는 고령 인구가 지배적인 만큼 변화도 가장 적다는 영도와 함께 시간 안에 박제되어 버린 듯한 인상을 준다. 흐르는 시간 안에서 어딘가 멈추어 버린 듯한 영도와 망연한 눈으로 바다 너머를 바라보는 화자. 제대로 살펴지지 못한 상흔은 사람을 머무르게 만들고, 먹지 않을 음식과 쓰지 못할 물건조차 버리지 못하는 화자는 홀로 있을 때마다 남몰래 ‘하나코’가 되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런 화자에게 변화가 생기는 것은 둘째 혜영이 서울에서 돌아오면서부터다. 나가기만 하던 영도에 누군가가 들어올 때, 어머니가 있는 곳에 딸이 돌아올 때 영도와 함께 화자의 시간도 움직인다. 혜영이 돌아올 즈음 화자에게서 발견되던 알츠하이머의 증상이 심해지고, 화자의 시간은 역행하여 타의에 의해 잃어버린 이름 ‘하나코’를 향해 흐르기 시작한다. 발병은 가슴 아픈 일임이 분명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자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되면서 혜영을 포함한 세 딸들은 처음으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물살을 일으킨 딸들은 저어되는 기색 없이 기꺼이 그 흐름에 올라탄다. 그뿐 아니라, 수세에 힘입어 힘껏 노를 저으며 엄마를 고향으로 데리고 간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양영희 감독 또한 그렇다.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까지 ‘가족 3부작’으로 이미 유명한 양영희 감독은, 잘 알려진 것처럼 재일한국인 2세로 그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 재일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다루고 있다. 그중 〈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양영희 감독은 화자의 세 딸 혜진과 혜영, 혜주처럼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의 뿌리를 찾아 함께 제주로 향한다.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인 강정희 씨는 제주가 고향인 4.3의 생존자로, 한평생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은 그 땅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그의 처음으로 가서야 한 사람을 겨우 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깊은 상처가 새겨져 있을 미지에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동행한다는 것. 근현대사의 아픔을 가로질러 가장 가깝고도 어려운 가족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떠나는 어머니와 딸의 여정에 주목해 보자.

영화 속 솔직하고 당찬 모습의 고등학생 '혜주(송지현)'에게 마음이 끌렸다면, 그건 '김희선' 덕분인지도 모르겠어요. 춤이라는 꿈에 대해 열정을 보여준 혜주를, 희선은 쏙 빼닮았거든요. 〈교토에서 온 편지〉를 연출한 김민주 감독의 전작 단편 〈김희선〉은 사랑과 우정에 솔직해지려 애쓰는 '희선'의 이야기를 닮고 있습니다. '희선'이라는 흔한 이름 때문에 생겨버린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에서 만나보세요.  

입김이 가득 나는 요즘 날씨에 보기 좋은 영화 한 편 소개해요. 둘째 딸 '혜영' 역을 맡은 한선화 배우가 출연한 〈창밖은 겨울〉은 진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추운 거리에서 나도 모르게 코트 주머니로 손이 자꾸만 갈 때, 어느덧 쓸쓸해진 마음을 발견할 때 보기 좋은 영화이지요. 한선화 배우의 잔잔한 연기가 돋보이는 〈창밖은 겨울〉과 〈교토에서 온 편지〉로 마음 따뜻하게 이 겨울을 마무리해도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