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사랑 고백, 디데이? <세기말의 사랑>

<세기말의 사랑> (감독 임선애)

2024. 2. 13.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97 세기말의 사랑

2월 14일 오늘의 큐 💡

Q. 🍫 사랑 고백, 디데이?

오늘은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입니다. 💘 기념일을 이유로 연인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저는 제 초등학생 시절이 생각나요. 같은 반 친구에게 마음을 고백하려고 나름 동네 슈퍼에서 제일 비싼 초콜릿을 골랐는데요. 인기 많던 그 친구의 책상에 이미 놓여있던 수많은 초콜릿을 봐버린 저는 순간 용기를 잃었어요. 😢 가방에 다시 초콜릿을 넣어 가져가면서, 발렌타인데이를 핑계 삼아 고백하려던 마음 역시 고이 접어 넣어두었던 기억이 나네요.

〈세기말의 사랑〉 속 영미(이유영)는 마음속 초콜릿을 몇 번이고 꺼냈다가, 집어넣었다가 하는 인물입니다. 콤플렉스가 된 지 오래인 외모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길 주저하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지요. 다가오는 사람들의 멸시를 피하지 않고, 불행을 섣불리 예상하지 않기도 해요. 종종 사람들을 피해 혼자 마음을 삭이기도 하지만 대신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사랑을 지켜내려고 하지요.

마음을 고백하기 좋은 오늘에 소개해 드리는 〈세기말의 사랑〉은 우리 주변에 어떤 식으로든 모습을 드러내는 사랑을 예찬하는 영화입니다. 좋아해서 떨리는 마음만이 사랑이 아니라, 잃을까 봐 무서워 떨리는 마음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영미와 유진(임선우)의 시간을 통해 전합니다. 오늘 보여드리는 인디즈의 글과 함께 님 역시 도처에 널린 사랑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마음을 숨기지 않기를, 응원할게요. 📣

오늘 만나 볼 이야기

1. 👀 순간을 바라보기 - 〈세기말의 사랑〉 리뷰

2. 🐈 존재하는 동안의 목격 -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3. 🎞️ 세기말과 현재 사이에 - 〈69세〉, 〈집 이야기〉

순간을 바라보기

〈세기말의 사랑〉

〈세기말의 사랑〉에 두 가지 함의가 있다면 “시들지 않는 사랑”과 “치정”일 것이다. 다사다난하게 얽힌 인물들의 사연은 언뜻 복잡한 관계의 치정처럼 보이지만, 애틋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엮인 이들의 드라마에는 시들지 않는 사랑이 있다. 생계와 주거가 불안정한 삶에 사랑까지 끼어들 자리는 없는 것 같지만, 인물들을 조금씩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인 것 같다. 물론 ‘세기말’이라는 시대의 운명을 향한 부푼 기대와 불안처럼, 상상만큼 거대하지도 않고 생각보다 강렬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어떤 용기를 통해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때로는 화면을 넘나드는 손길을 통해 사랑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간다. (중략)

브라운관에서 종소리와 함께 전파되는 새해의 풍경은 온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떠들썩했던 한때가 되었다. 결국 목숨은 건재하고, 세상은 멀쩡하다. 인물들은 “위장결혼”과 “불륜”이라는 불가해한 사랑으로 시끄러운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영화 또한 그렇게 명명되도록 흘러가지 않았다. 〈세기말의 사랑〉은 그 순간순간의 사사로운 사랑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영화다. 대일밴드로 감싼 손가락이 아닌, 네일아트로 꾸며진 정갈한 손톱. 도영의 시선인 마지막 장면의 이 클로즈업은, 시작하며 먼 거리의 도영을 바라보던 영미의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이어 카메라는 가까이서 영미 얼굴의 다채로운 찰나를 비춘다. 여기에 그 너머의 무엇(가로막힌 벽이나 어떤 대상)을 덧대지 않는다. 비로소 세상의 끝을 의미하는 ‘세기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세기말의 사랑’을 완성시킨다.

인디즈 조영은

전문 보러가기

〈세기말의 사랑〉

감독 임선애｜출연 이유영, 임선우, 노재원

116분｜극영화｜12세이상관람가

이름은 김영미, 별명은 세기말인 칙칙한 그녀 뉴 밀레니엄의 시대, 컬러풀한 인생을 향해 전진! 1999년 12월 31일. 세상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영미'는 남몰래 짝사랑하던 '도영'을 향해 인생 최대의 용기를 발휘한다. 그러나 2000년 1월 1일. 돈도 사랑도 모두 날린 채 새천년을 맞이하는 순간, '영미' 앞에 ‘도영’의 마누라라는 낯선 여자 ‘유진’이 나타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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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동안의 목격

〈세기말의 사랑〉과 〈사라지는 것들〉

〈세기말의 사랑〉은 흑백에서 컬러로 한 번 전환된다. 정직테크 택배기사 도영의 공금 횡령을 눈감아 주었던 영미는 컬러의 21세기를 교도소에서 나온 이후에야 경험할 수 있었다. 의외로 그 경험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출소와 동시에 만난 유진이다. 돈은 다 갚겠다며 조수석에 앉아 이야기하는 유진은 영미에게 적잖은 인상을 남긴다. 유진은 도영과 이혼을 약속한 부부이며, 공금 횡령의 원인 제공자였고, 유전적 근육병을 앓고 있어 첫 만남부터 영미의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던 영미는 돈을 돌려받기 전까지 유진의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한다. 불합하는 선택이 더 쉬웠을 영미와 유진은 대담하고도 영민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 공통적인 특질을 지닌 두 인물들은 눈앞의 상대를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눈치와 객관화가 빠른 유진은 영미의 과거를 읽고, 하고 싶은 말 곧잘 하며 곁에서 거동을 돕는 영미는 유진의 현재를 보살핀다. 영화는 세기말과 밀레니엄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배경을 제시하고 있지만 영미와 유진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 시대를 등지고서 함께 포개져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서로는 비참해지는 모습의 목격자가 되는 일을 기꺼이 허용하고, 목격자가 돼 주어 고맙다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세기말의 사랑〉 속 유진은 도영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곱씹으며 말한다. “난 왜 도영이를 구하고 싶었을까? 나도 날 못 구하는 주제에.” 그러나 시대와 대상을 불문하고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 구하고 싶은 마음은 내가 처해 있는 상황과 따로 놀고, 이 모순된 지점에서 상호 돌봄은 실현된다. 유진의 말에서 〈사라지는 것들〉 속 독거노인과 길고양이들을 떠올렸다. 재개발로 인해 곧 허물어질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동네 길고양이들의 장례를 치른다. 굉음이 들리는 이곳은 안전하다는 감각으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지만 할머니는 길고양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죽음을 목격한다. 곧이어 할머니와 고양이들의 죽음 이후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영미가 유진에게, 유진이 영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존재하는 동안 지켜봐 주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누군가를 구하는 일에 있어 ‘나도 나를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 손을 뻗고, 묵묵히 지켜봐 줄 때의 감각만이 중요해진다. 각자도생의 풍경이 불쑥 다가오는 때에도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인디즈 박이빈

〈사라지는 것들〉

감독 김창수

10분｜애니메이션｜2022

고요한 동네에 재개발 현수막과 고양이 울음소리 그리고 노인이 있다. 노인은 떠나가는 고양이들의 몸을 잘 닦아 몇 번 토닥이고, 몇 번 쓰다듬어 소중히 묻어준다. 노인의 집 마당에는 그 고양이들이 함께하고, 집 안에 노인은 외로이 홀로 있다. 노인이 집 밖을 다시 나서는 순간, 고양이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그 행렬에는 노인 자신도 있다. 저 멀리 무지개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노인과 고양이는 함께 걸어간다. 모두 다 사라지고, 나조차 사라져도 다시 만나고 싶은 서로가 있다면. 우리 다시 만나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노인과 고양이처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인디즈 김지윤)

*2월 14일, 오늘까지만 아래에서 볼 수 있어요!

인디그라운드로 보러 가기

🎞️ 세기말과 현재 사이에

〈세기말의 사랑〉을 좋아하셨다면, 분명 이 두 영화 역시 좋아하실 거에요. (👀이미 보셨을 수도..?!) 오랜 시간 콘티, 스토리보드 작가로 지내온 임선애 감독의 장편 데뷔작 🧓 〈69세〉는 인생을 뒤흔든 사건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69세 효정(예수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이유영 배우가 출연한 작품 🏠 〈집 이야기〉는 자신만의 집을 만났지만, 여전히 늘 공허했던 은서의 마음을 비추고 있지요. 〈69세〉에서는 임선애 감독이 세상을 향해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또 〈집 이야기〉에서는 이유영 배우만의 차분하고 잔잔한 모습을 마음껏 눈여겨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임선애 감독과 이유영 배우의 멋진 작품들을 관람해 보세요! 🎥

〈69세〉

감독 임선애｜출연 예수정, 기주봉, 김준경

100분｜15세이상관람가｜2020

69세 효정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9세의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치욕적인 일을 당한다. 긴 고민 끝에 효정은 동거 중인 동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경찰과 주변 사람 모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효정을 치매 환자로 매도하고, 법원 역시 나이 차이를 근거로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효정은 피해자가 더 고통 받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가해자를 향한 일갈을 준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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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야기〉

감독 박제범｜출연 이유영, 강신일, 공민정

92분｜12세이상관람가｜2019

혼자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신문사 편집기자 은서는 살던 집의 계약이 끝나가고 정착할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하자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고향 집에 잠시 머물기로 한다. 인천에서 24시간 출장 열쇠를 전문으로 하는 아버지 진철은 가족들이 떠나버린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함께였던 '우리 집'을 떠나 각자의 '집'이 생겨버린 은서의 가족. 예상치 못하게 아버지와 단 둘이 지내게 된 은서는 고향 집에서 지내는 동안 잊고 있었던 가족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되고, 평생 남의 집 닫힌 문만 열던 진철은 은서를 통해 자신의 가족들에게 조금씩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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