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페스티벌〉은 말한다. “모든 직업인(과 직업을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은 위대하다”고.
나도 내 삶을 걸어가고, 영화도 그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다 만나게 되는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에게는 필연적으로 마음이 간다. 영화 쪽으로 걷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삶을 걷다 만난 영화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잘 만든 영화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무능과 게으름, 실패와 비주류 사이에 최선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 질까. 그때부터 최선이라는 단어는 희석될까, 아니면 더욱 공고해질까. 이 영화가 최악의 최선이듯, 아마도 당신은 〈익스트림 페스티벌〉을 보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을 것이다.
영화의 가장 첫 장면, 스타트업 대표 혜수(김재화)는 열심히 현수막을 붙인다. 그리고 영화는 내내 현수막이 걸린 무대 앞에서 진행된다. 사람들은 이 앞에서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관객은 현수막 앞에서 마침내 활짝 웃는 혜수를 보며, 영화의 맨 처음으로 돌아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현수막을 걸던 혜수를 떠올리게 된다. 망하든 망하지 않았든, 어쨌든 이 무대는 혜수의 무대다. 자신만의 무대를 가져본 사람은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니다. 혜수는 그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이다.
이 영화는 너무 게으르거나 너무 무능한 사람들의 ‘최선기’다. 전자를 채찍질하는 것이 현실적이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성공의 여정보다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 최선을 다하기까지의 과정이 더욱 궁금하다.
최선은 필연적으로 ‘익스트림’하다. 그리고 실패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실패도 잔잔하지 않다. 하물며 짝사랑의 실패에도 마음은 요동치는 법이다. 영화를 보고 뜬금없이 〈산정호수의 맛〉(2011)이 떠오른 까닭도 바로 실패의 여정 때문일 듯하다. 한 인간이 실패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히 따라간다는 점이 두 영화를 나란히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혜수와 순임의 무능하거나 초라한 모습보다, 최선을 다할 때가 더 눈에 들어온다. 실패에 있어서 혜수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순임 같은 사람도 있다. 실패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실패 속에서 안락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대척점에 있지만 같은 궤도를 도는 실패 앞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의 실패를 떠올린다.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더듬어 본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을 견디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견뎌내는 모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