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곰팡이가 연기하는 영화를 혹시 보셨나요? 🤔 '아니 곰팡이가 AI도 아니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셨을 텐데요. 박세영 감독의 〈다섯 번째 흉추〉에서는 인간의 애정과 눈물을 한가득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곰팡이의 모습을 발견하실 수 있어요. (충격)
집에서 곰팡이를 마주한 경험, 다들 한 번씩은 있으실 거에요. 처음엔 크기가 조막만 했는데 며칠 지나고 보면 우수수 자라있는 곰팡이들! 축축하고 습기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는 곰팡이의 먹이가 알고 보니 우리의 사랑과 슬픔이라면, 과연 다 자란 곰팡이의 생김새는 어떤 모습일까요?
몇 개의 단편과 패션 필름들을 제작하고, 다양한 작품에서 촬영감독으로 활동해온 박세영 감독의 중편 〈다섯 번째 흉추〉는 사람의 척추뼈를 탐하면서 생명력을 얻는 곰팡이의 시각적 모습을 강조하여 표현한 작품입니다. 오늘은 각자의 생활이 곰팡이와 연관되었던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한 😏 인디즈의 글과 함께 〈다섯 번째 흉추〉의 주역 문혜인 배우의 영화도 소개할게요.
보존과 영원
〈다섯 번째 흉추〉
나는 이불 빨 시기를 감정으로 가늠한다. 침대에 누워 너무 많은 생각을 했을 때,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을 때,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을 때. 심지어는 감지 않은 머리도 눅진한 감정의 척도가 된다. 권장되는 세탁 주기와는 무관하게 그곳에 누워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침구를 세탁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빠져들고, 그 때문에 내가 사용하는 침구는 세탁 주기를 넘긴 적이 거의 없다. 정신이 망가질수록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 버려야겠다는 충동은 침대와 내 상태를 동일시하는 데에서부터 기인했다. 이불에 들러붙은 감정들을 살균해 버리기 전까지 부정한 것들이 유령처럼 남아 내 위에 눌러앉을 것만 같은 착각 안에 산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한 와중에 매트리스에 핀 곰팡이가 몸을 얻게 되는 영화를 보았다. 이런 상상 안에 사는 사람이 이 징그럽고 아름다운 영화에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후략)
이 더운 날에 남은 쌀밥을 실온 보관 했다.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을 깜빡하고 며칠씩 집을 비우면 지긋지긋한 곰팡내가 창의적인 모양을 하고 나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 곰팡이를 생각하면 하루 빨리 없애고 싶고, 가능하다면 갖다 버리고 싶다. 오랜 세월 버려졌을 곰팡이는 내가 폐기했다고 믿은 자리에서 피어나고 있었을까. 이질적 사운드가 귓속에 울리고 까맣고 빨간 곰팡이의 유연함이 눈앞에 펼쳐질 때, 〈다섯 번째 흉추〉는 곰팡이의 피어남에게 보내는 연서라는 것을 알았다.
가장 빠른 이해의 방식은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곰팡이와 인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기묘함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순간 이해할 이유도 느끼지 못했던 곰팡이가 되어 버린다. ‘매트리스에서 생명체가 탄생한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은 타자를 감각하며 살아 있음에 신경을 기울일 수 있도록 유도했기에 실현가능했다. 박세영 감독의 단편 〈Vertigo〉는 내가 아닌 것이 내가 된 것처럼 감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섯 번째 흉추〉와 함께 보면 좋다.
〈Vertigo〉에서의 무용수들은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회전하고, 맞닿을 듯한 서로의 시선은 끝내 다른 곳을 향한다. 무용수들의 숨소리는 회전하지 않는 나를 그들과 같은 간격으로 숨쉬게 하고, 시선이 맞닿는 순간을 기다리게 한다. 짧은 순간 무용수가 된 것이다. ‘기존의 범주’에서 이탈한 방식으로 곰팡이의 탄생과 무용수의 호흡을 함께할 때, 타임랩스만큼의 빠른 속도로 타자를 알게 된다.
인디즈 박이빈
〈Vertigo〉 감독 박세영|5분|실험
호루라기를 분다. 호루라기 외곽에서 시선이 맞닿는다. 호루라기를 불던 이가 자리이서 이탈한다. 시선이 엇갈리고 합체된다. 호루라기는 계속 불린다.
📹 찍고 또 찍고
박세영 감독은 일 년에 서 너 편 가까이 영화를 제작해낸 바 있지요. 최근의 단편 〈금장도〉, 〈호캉스〉, 〈Vertigo〉는 모두 한 해에 제작된 작품이에요. 가히 다작 감독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은데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독창적인 미장센이 잘 드러난, 비주얼리스트로의 작업들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다섯 번째 흉추〉의 주역 문혜인 배우는 그간 다양한 독립영화에 출연하였기에 아마 인디즈 큐 구독자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계실 텐데요. 아래에서 박세영 감독의 작업들과 함께, 수많은 단편영화에서 존재감을 뚜렷하게 알려왔던 문혜인 배우의 참여작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방성준 감독)도 함께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