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에 번쩍 서에 번쩍> (감독 이광국)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 288 〈동에 번쩍 서에 번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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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오늘의 큐 💡
Q. 🏃 일단 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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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중반에 들어선 설희와 화정. 두 사람에겐 남모를 고민이 있습니다. 설희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점이 고민이고, 화정은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지요.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하기엔 아직 서툴고 미숙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리기만 한 것도 아닌 시기에 둘은 동해에서 일출을 보며 마음을 다잡기로 합니다.
그런데 웬걸! 밤을 새서 떠난 탓인지, 바닷바람 맞으며 깜빡 졸다 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지요. 이광국 감독의 영화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청춘의 모습을 차분히 지켜봅니다. 기쁘게 떠난 며칠간의 여행에서 설희와 화정은 사소한 오해로 다투게 되고, 각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서툰 마음은 오히려 발걸음을 재촉하는 법!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내 머릿속 고민 사이를 뛰어다니다 보면 어지러운 마음은 어느새 가라앉고 새로운 해답을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파도 앞에 당당히 서서 해돋이를 정면으로 맞이할 수도 있겠지요. 님의 하루도 더욱 화창하고 푸르길 바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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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짧은 여행을 다녀온다. 일출만 보고 오기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로. 마음 깊이 간직한 소원을 그곳에 둔 채 떠오를 해마다 반짝반짝 빛이 나길 바라며 설희와 화정은 동해로 달려간다. 예상보다 춥고 어두운 동해 바다는 낭만과는 먼 흑백의 그림이었지만 그마저도 둘이기에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청춘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어느새 이십대 중반이 된 설희와 화정은 막막한 취업의 길에서 헤매인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고, 번번이 탈락만 하는 둘은 그런 일상에 지쳐만 간다. 심지어 함께 사는 집도 계약이 종료되어 또 한번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과제까지 생겨버렸다. 이동에 필요한 힘을 찾아야만 하는 설희와 화정. 어깨에 내려온 막중한 현실에도 둘은 가벼이 ‘잘 될 거야‘라며 웃음과 함께 형태 없는 희망을 믿어보기로 한다. 뜬금없이 모래에 박혀있는 깨진 거울과 버려진 박스. 원래의 자리를 잃어버린 듯한 것들이 널린 동해는 설희와 화정의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로 가득했고, 잠시 잠든 사이 해는 완연히 떠올라 버렸다. 생각한 소원은 빌지 못했고, 하려던 말은 꺼내기 어려워졌다.
화정은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이유 없이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별일 아니라는 듯 털어놓는 화정의 고백에 설희는 마음이 상하고, 이내 둘은 균열을 붙이지 못하고 갈라져 동해 어딘가에서 혼자가 된다. 떨어진 둘의 시선은 각자가 향하고 싶은 곳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낯선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 공황장애가 있는 지안을 도와 집까지 배웅을 해주는 설희와 키우던 앵무새를 잃어버린 학생과 함께 여기저기 발걸음을 함께 해주는 화정. 동해로 온 목적을 잊어버린 채 ‘지금’에 집중한 둘은 여행보다 더 좋은 환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홀로 유영하던 네 사람은 서로의 퍼스널 스페이스의 경계를 허물고, 헝클어트리며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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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다정스런 움직임들이 영화에 넉넉히 등장한다. "동정심이면 어때요."라는 설희의 말. 나를 보는 듯한 기시감에 마음이 가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과정에 자연스레 동조된다. 혼자이고 싶은 마음과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동에 번쩍 서에 번쩍〉에서는 심리적 거리감을 유연히 다루며 네 사람의 관계를 연결시킨다. 외로움과 동정심, 증오와 회피. 대칭되는 설희와 지안, 화정과 학생은 혼자였을 때보다 함께 존재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본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어떤 일을 당장 하고 싶은지. 망설이는 순간도 잠깐. 쿵, 쿵 당찬 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다.
그리고 여전히 직면해야 할 일을 남겨둔 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설희와 화정이 화해를 했을 수도, 앵무새를 찾았을 수도, 직장을 구했을 수도 있다. 동해에서 생겨난 미지수를 꼭 붙잡는 영화는 따스한 해가 비추는 아침에 눈이 부신 반짝임을 포착한다. 그런 내일을 살게 한다.
인디즈 박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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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번쩍〉
감독 이광국
출연 여설희, 우화정, 서지안
101분|극영화|2025
취업 준비에 지친 두 친구, 설희와 화정은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기 위해 즉흥적으로 바다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해를 보지 못하고 크게 싸우고, 각자 우연히 다른 사람들을 만나 예기치 않은 하루를 보낸다. 삶도 여행도 뜻대로 안 되지만, 두 친구는 그래도 오늘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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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리고 〈익스트림 페스티벌〉
어쩌면, 삶이라는 건 참 얄궂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특히 청춘에게는 자신보다 아득히 앞서서 나를 놀려먹는 존재처럼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청춘이라서 우리는 그런 삶을 좇다가 나뒹굴기도 하고, 수많은 거절을 맛보고, 그러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훌쩍 친구와 바다로 떠나버릴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삶보다 뒤처지는 그 순간, 타인의 거절에 가려져 미처 돌보지 못한 나를 발견하며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설희는 영화 속에서 꽤 많은 거절을 맛본다.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왜 꿈을 묻는지 의문을 가졌기에 거절당하고, 내 사정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룸메이트 화정에게도 이제부터는 혼자 살고 싶다며 룸메이트로서 거절 받는다. 아직 꿈도, 집도 찾지 못했는데 거절만 받는 청춘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다. 이는 화정도 마찬가지다. 조심스레 어른으로서 독립하고자 마음을 비추었더니, 룸메이트 설희가 크게 화를 내며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붙을 줄만 알았던 회사에서도 불합격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렇듯 청춘은 늘 거절의 순간에 놓이지만, 쉬지 않고 동분서주하며 여기저기를 떠돌아야 한다. 거절 이후의 여정에서 설희와 화정은 마치 자신의 과거와 닮은 지안과 한나에게서, 오래간 외면해왔던 자기 모습을 마주한다. 극복하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닮은 친구들과 연을 맺으며 그들은 과거에 얽매여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다시 현실이 있는 서울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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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하루를 길게 펼쳐보면 마치 삶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삶 또한 거절의 연속에 피어나는 새로운 만남과 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있기 마련이니. 이런 삶을 닮은 하루라는 시간선은 〈익스트림 페스티벌〉의 혜수의 하루와도 닮아 있다. 열심히 준비해온 축제의 이름이 하루아침에 바뀌어도, 그럼에도 고군분투해 진행한 축제가 엉망이어도 축제는 이어진다. 그 과정에 내 모든 치부가 밝혀져도, 왜인지 돌아보니 후련함과 아쉬움이 공존한다. 삶도, 축제도 결국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기에 기대를 걸어볼만하고, 또 그렇기에 끝까지 숨이 터져라 달려보아야 한다. 그 수많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내일이 올 테니까.
삶은 얄궂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편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마치 일출을 보러 간 여정에서, 해 사진은커녕 둥그런 보름달 사진만 받게 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처럼 말이다. 어쩌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혜수의 〈익스트림 페스티벌〉이 진행된 하루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뒤로하고 집에 돌아가면, 잘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 온다. 그렇다면 우린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인디즈 정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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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페스티벌〉
감독 김홍기
출연 김재화, 조민재, 박강섭, 장세림
94분|극영화|2023
개최 일주일 전 갑자기 정종 문화제에서 연산군 문화제로 바뀐 망진의 지역 축제. 스타트업 대표 ‘혜수’는 축제를 무사히 진행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무늬만 이사 ‘상민’은 퇴사한 직원 ‘래오’를 알바로 데려오고, 축제 당일 현지에서 뽑은 인턴 ‘은채’는 과하게 열정적이다. 설상가상…! 축제의 막이 오르기 직전 객석은 텅 비고, 초대가수는 펑크 나고, 지역 극단은 보이콧을 선언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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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강원도 동해를 배경으로 하지요. 동해 바다를 앞에 두고 설희와 화정이 겪는 일들은 왠지 〈은빛살구〉에서의 에피소드를 닮았습니다. 〈은빛살구〉에서 정서는 아버지에게서 돈을 받아내기 위해 역시 동해로 떠납니다. 정서가 주로 마주하는 풍경은 동해 묵호항의 모습입니다. 바쁜 도시에서의 일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 우리는 종종 바다를 찾게 됩니다. 정서도 설희와 화정처럼 해변에 새로이 뜬 둥근 해를, 가족들과의 다툼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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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살구〉
감독 장만민
출연 나애진, 안석환, 강봉성, 김진영
121분|극영화|2025
퇴근 후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이자 비정규직 웹디자이너 ‘정서’(나애진). 남자 친구 ‘경현’(강봉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서울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 준비가 쉽지 않다. 이에 엄마 ‘미영’(박현숙)은 이혼할 때 ‘영주’(안석환)에게 받은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건네주고, ‘정서’는 아버지 ‘영주’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 벌교횟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가깝지만 먼, 낯선 가족들의 욕망에 휘말리게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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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번쩍〉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이광국 감독과 함께 한 연기 워크샵에서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해요. 이 시간들을 꼭 닮은 영화 〈최초의 기억〉을 소개합니다.
한창 상영 중인 〈최초의 기억〉은 연기 워크샵 수업 시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한데 모인 수강생들은 각자 저마다의 '최초의 기억'을 주제로 독백 연기를 하게 됩니다. 영화는 실제 오랜 시간 연기 워크샵을 진행해 온 안선경 감독과, 여러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장건재 감독의 공동 연출작이기도 해요. 이러한 배경 덕에 영화는 종종 다큐멘터리 같기도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보게 되는 듯한 묘한 떨림을 받게 되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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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어떤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사를 외우고 몸짓을 따라 하는 행위를 넘어, 인물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인물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어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하고 인물의 두려움이 곧 나의 두려움이 되어 함께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연기라는 행위는 대담하고 용기 있다. 〈최초의 기억〉은 이런 지점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 영화다. (중략)
〈최초의 기억〉은 ‘연기’라는 행위를 통해 나와는 완전히 다른, 누군가의 기억을 삼키고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뱉어내는 과정을 그려내며 두 인물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연기를 하는 행위는 나와 누군가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같기도 하다. 서로 다른 타인들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들키고 싶지 않은 어떠한 두려움까지 함께 포용해 가며 하나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당신의 삶에서 나의 삶을 겹쳐 볼 수 있게 된다. 인디즈 서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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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억〉
감독 안선경, 장건재
출연 박종환, 강민주, 이금주, 서동근, 조은경, 백요선, 엄선영, 강동윤 외
141분|극영화|2023
연기 워크숍에 참여하는 일곱 명의 배우들. 그들에게 서로를 연기하는 ʻ모방 독백’ 과제가 주어지고, 자신이 맡은 인물의 ʻ최초의 기억’을 만들어내야 한다. 누군가의 기억을 마주하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자신의 감정으로 되살리는 일. 낯설고 어색한 이 시도는 점점 더 깊고 조용한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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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나스 소식
진정한 '연기'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는 자리! 〈최초의 기억〉의 주연을 맡은 박종환 배우의 나눔자리 후원을 기념하며 〈절해고도〉 인디토크가 열린다고 합니다. 최근 박종환 배우와 영화 안팎으로 작업을 오래 해온 김미영 감독이 영화 상영 후 약 한 시간 동안 '배우 박종환의 내면과 시간'을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눈다고 해요. 평소 박종환 배우가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연기에 임해왔는지, 수많은 작품을 거치며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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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만으로도 벅찬데 읽어야 하는 오천 개의 종이책으로 어깨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을 때··· 그럴 때 읽기 좋은 인디즈의 브런치를 소개합니다. 이곳에서는 매주 인디즈가 써낸 독립영화 개봉작 리뷰를 볼 수 있어요. 이미 본 영화의 리뷰에서는 다정한 공감의 언어를, 아직 못 본 영화의 리뷰에서는 영화로의 길잡이가 될 단어들을 만날 수 있답니다. 어플로도 웹페이지로도 쉽고 간편하게 꺼내 볼 수 있는 인디즈의 영화 글, 많이 많이 찾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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