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망〉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평소처럼 길을 걷던 '남자'(하성국)를 마침 택시에서 내리던 '여자'(이명하)가 알아보고 여자는 남자에게 아는 척을 해요. 늘 사람 많은 을지로의 한복판에서 둘은 오랜만에 마주치며 산책하듯 함께 길을 찾지요. 둘 중 한 사람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면 영영 시작하지 못했을 이 영화는 우연한 만남이 가져다준 시간을,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요. 벌써 시간은 흘러 1월 중순을 열심히 지나고 있습니다. 일찍이 세워 둔 연초의 계획은 몇 번의 우연 때문에 지난 2주간 달성하지 못했어요. 간식을 좀 덜 먹어보자 했던 다짐은 동네에 세 개에 이천원 하는 붕어빵 트럭이 갑자기! 생겨서 포기했고요, 주말에도 좀 일찍 일어나보자 했던 다짐은 역시나 침대가 저를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아직 1월이 절반이나 남았고요, 긴 긴 설 연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요. 오늘 길을 걷다가 우연히 동창을 만날 수도 있고요, 뵙고 싶었지만 안부를 여쭙기 쑥스러웠던 은사님을 지하철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날들입니다. 너무 영화 같은 상상이라고요?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아쉽습니다. 분명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았던 지난 몇몇의 밤들이 불현듯 님의 마음을 스쳐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은 〈미망〉과 함께 영화와 현실의 구분이 흐릿해지는, 번쩍이고도 짜릿한 순간들을 만나볼까 합니다. 😉🌟

 

(중략) 원하지 않는 대로 그려지는 것 같아 두려웠던 지난날을 떠올렸을 때 인생이라는 그림은 마냥 친절하지는 않다.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부끄러움을 안겨주기도, 불안을 엄습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운명처럼 와닿았던 순간들이 우리의 거름이 되어 미래의 나를 완성시킨다. 모든 경험과 기억은 나의 자산으로 귀화한다. 펜을 휘갈기며 무언가를 담을 작정을 했던 순간은 원하는 대로 그려지지 않았을지라도 나의 이름으로 짜여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잠에 빠져 다음날의 기상을 이행하는 우리에게 지루하게만 보였던 하루하루가 나의 거름이 된다는 뜻이다.
크기와 상관없는 변화가 매일 같이 발생한다. 그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들. 〈미망〉은 종로-을지로 일대를 걸어가는 여러 인연들을 포착한다. 군중의 틈새 속에 있는 우리, 먼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낼 편지 속에서 오늘을 어떤 날로 기록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편지 속에서 기억될 우리는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숨을 쉬길 바란다. 

〈미망〉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눴던 한 밤의 인디토크 시간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요. 지금은 〈미망〉을 보신 분들이 적지 않게 있지만, 인디토크가 진행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미망〉과의 첫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날도 역시 '팀 미망!'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영화의 주역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었는데요. 김태양 감독과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배우가 함께한 인디토크 내용을 여러분께 전합니다.

참석 김태양 감독,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배우

진행 곽명동 마이데일리 기자

기록 인디즈 안소정

GV 시간이 끝나고 며칠 뒤 카페에서 나오는 길에 비를 만났다.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카페에서 우산을 빌렸는데 〈미망〉 1부와 2부에서 등장인물들이 들고 다니던 것과 똑같은 빨간색 접이식 우산이었다. 영화가 슬그머니 일상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자연스레 〈미망〉 인디토크 때 나왔던 말들이 떠올랐다. 영화 〈미망〉을 보고 나서 돌고 돌아 다시 만나기를,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이들에게 여러모로 다정했던 지난 인디토크의 기록을 나누고 싶다.

곽명동: 감독님께서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극 중 모더레이터가 1954년도 〈미망인〉 영화 얘기하면서 저 1954년도의 배우들도 이 근처 서울극장을 걸었던 분들이라고 말하고 나서 극장 문을 나와 팀장님을 만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본인의 이야기를 이제 하게 되는 것이고요. 감독님께서 1954년도의 영화와 2020년대의 서울을 이어지게 하려고 했다는 느낌을 받아서 한번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태양: 기자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제가 영화 속에서 보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조금 무너뜨려 봐야겠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중에서 이명하 배우가 모더레이터로서 관객분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고,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경험하셨겠지만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스크린 속에 있는 다른 관객들이 이렇게 마주 보게 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라든지. 그리고 모더레이터로서 관객에게 드리는 말씀은 뭐였냐면, "여러분들이 극장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런 것들도 그렇고, 제가 지금 이 꽃을 들고 온 이유는 여러분들이 아마 짐작하실 텐데. (영화 속처럼) 해바라기를 준비하고 싶었는데 해바라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해바라기 비슷한 꽃을 여러분들은 알아주시지 않을까 해서 준비해 봤습니다. 이따가 혹시나 드릴 수 있는 분들에게는 이 꽃을 전달해 드리고 싶고요. 이런 식으로 제가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님이 주신 질문에, 어떤 부분이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설명을 드리자면 꽤 많은 부분들을 설명을 드려야 될 것 같아서 대표적인 거 딱 하나만 말씀드리면요. 여러분들 영화 엔딩 보셨을 때 버스 좌석을 길게 보셨잖아요. 그러신 분도 있을 테고 아닐 분도 계셨겠지만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그 객석이 버스의 뒷좌석처럼 느껴지시길 바랐습니다. 영화와 우리가,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이 스크린을 두고 막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통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 극장에 와주신 것도 너무 기적 같고, 이 버스에서 내려서 극장 문을 열고 나가서 오늘 밤거리를 걸으실 때. 이 홍대 앞의 거리도 1950년대 거리가 있었겠죠. 그런 거리의 기분을 여러분들도 느끼시기를 바라봅니다.

관객: 장례식이라는 소재가 영화나 드라마나 많이 사용되는 소재인데, 불교식 장례가 차용되었다는 게 저는 되게 새롭게 다가왔거든요. 이 영화에서는 순환을 되게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게 불교적인 세계관과 연관된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태양: 저는 종교를 생각할 때 조금 학문처럼 받아들이는 게 있어요. 불교를 특히 좋아하는 것 때문에 불교를 선택한 건 아니지만, 그 교리나 순환의 개념은 불교적인 사상이잖아요. 영화의 두 번째 파트에 보면 부처님 오신 날 연등들이 달려 있어요. 말씀하신 것과 같이 불교적인 부분들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과 맥이 같다고 저는 생각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파트에서 하성국 배우가 12시에서 12시라고 말하듯이, 그것도 순환의 얘기잖아요. 이명하 배우가 세 번째 파트에서 첫 등장하는 게, 법성계라는 미로를 돌고 있는 거예요. 그게 입구로 들어가면 입구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출구와 입구가 같은 구조를 가진 불교의 법성계라는 개념이고, 그 개념을 형상화 해놓은 미로인데요. 저는 그걸 염두에 두고 로케이션을 섭외했었고, 그런 부분들이 영화 곳곳에 녹아들어 가길 바랐습니다.

인디스페이스는 작년 12월에도 〈미망〉의 주역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날의 모더레이터는 바로바로! 🤩 소문난 독립영화 사랑꾼 유지태 배우였습니다. 평소에도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 프로그램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독립영화를 소개한 유지태 배우는 2024년 12월 1일, 〈미망〉의 관객들을 초대하고 GV 진행도 성공적으로 마쳤다지요. 그 생생한 현장을 담은 영상을 전합니다 📹 

〈미망〉의 많은 우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배우들의 말간 연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출연한 배우들 중 오늘은 이명하 배우의 전작을 함께 만나볼까요? 영화 〈완벽한 내일〉은 이명하 배우가 배우 지망생 '미진'으로 출연하는 2019년도 단편영화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는 '미진'은 계속해서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얘기하지요. 미진은 일터의 동료에게 털어놓은 푸념과도 같은 이야기가 때로 부메랑처럼 돌아와 가슴에 콕 박혀버리고 만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완벽한 내일이 완벽한 '내 일'로 채워지는 일,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 아래에서 영화를 만나보세요 🎬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장소였던 종로와 을지로, 광화문의 모습을 한가득 보여주었던 〈미망〉! 잠시 우연을 따라가는 눈을 홍콩으로, 또는 유럽으로 돌려볼까 합니다.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와 〈국경의 왕〉을 통해 여행이 내게 주는 우연의 재미를, 그리고 신비한 매력을 다시금 만날 수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