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정말 길었죠? 무척이나 길었던 탓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에요. 매일 하던 일인데도 왜 이렇게 어색한지.. 꽁꽁 얼어붙은 날씨 탓인가 싶다가도, 손과 발이 제 속도를 못 찾고 있는 느낌! 이상하게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아요. ☃️🤔

긴 연휴 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들 모두 챙겨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영화관 가서 한두 편 정도는 봐야지, 했었는데요. 꽤 재미있는 영화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왠지 명절 때 보는 영화는 평소보다 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평소와는 다른 시간대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봐서 그런가 봐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부모 바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부모 바보〉는 일상 속 풍경들을 낯설고도 새롭게 그려낸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복지관에서 일하는 '진현(윤혁진)'은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사회복무요원 '영진(안은수)'이 실은 노숙을 하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몇 번의 대화가 이어지고 둘의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지는데요. 와중 복지관을 이용하는 '순례(나호숙)'의 어지러운 한탄이 진현을 향해 쏟아지고, 진현은 복잡한 마음을 먹게 됩니다.

〈부모 바보〉의 특이한 제목, 독특한 촬영 구도와 음악이 주는 감흥을 파악하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독립영화를 볼 때 종종 느끼게 되는, 익숙하지 않아 더 배가 되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낄 수도 있겠어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때에 함께 보면 좋은 작품들을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영화관은 다른 사람의 일상을 합법적으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상영되면 스크린 위에는 타인의 삶이 펼쳐진다. 관객은 그들을 관찰하고 때로는 참견하고 참조하며 영화를 즐긴다. 스크린 너머의 일상을 바라보다 보면,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영화 속 이야기가 꼭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거나 등장인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독립영화는 이러한 ‘내밀함’을 품고 있다. 익숙하고 친밀한, 때로는 그래서 ‘지리멸렬’하기도 한 일상의 풍경이 담겨 있다. 가족을 소재로,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낸 두 편의 독립영화 〈부모 바보〉와 〈남매의 여름밤〉을 소개한다.

〈부모 바보〉는 인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일상의 풍경을 소환한다. 사회복지사 진현, 지각을 일삼는 사회복무요원 영진, 복지관을 다니고 있는 순례는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진현은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고 영진은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고 순례는 아들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결핍을 느끼는 이들이 사회복지관으로 모인다. 인상적인 지점은 세 인물의 만남이 극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 사람이 만나 벌어지는 일은 일상의 ‘소동’ 정도로 그려진다. 이들은 서로에게 구원이 되지도, 서로를 파멸로 이끌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를 거쳐 다시금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올 뿐이다. 영진과 진현 사이 흐르는 침묵처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치유하지도 못하는 이들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남매의 여름밤〉은 이별이라는 일상에 주목한다. 옥주와 동주 남매는 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게 된다. 옥주와 동주, 아빠에 이어 고모까지 합세하며 다섯 사람은 ‘기억에 남을’ 여름 방학을 보낸다. 인상적인 점은 이별의 일상성을 포착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이별을 겪었거나 겪게 된다. 빛바랜 결혼사진은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할아버지가 할머니와의 이별했음을 짐작하게 하고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옥주와 동주도 생애 처음으로 사별을 경험한다. 영화는 이별로 인한 상실감을 세밀하게 포착하면서도 이별과 삶이 다른 차원에 놓인 것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할아버지가 즐겨 듣는 카세트테이프,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고모의 꿈, 옥주가 찾은 오래된 앨범은 삶의 흔적인 동시에 이별의 흔적이다. 영화는 상실과 이별의 고통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상실도, 이별도 일상의 일부라고 말하는 듯하다.

일상의 관계를 스크린 위에 되살린 〈부모 바보〉와 일상을 반추하게 하는 〈남매의 여름밤〉. 영화 안에서 일상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오늘만큼은 영화가 이끄는 대로 예상치 못한 일상의 면면을 ‘발견’하는 재미를 누리는 것은 어떨까.

인디즈 이지원

〈부모 바보〉 속 사회복지사 '진현'은 갈 곳 없는 사회복무요원 '영진'을 흔쾌히 집으로 데려와 쉴 수 있게 하지요. 〈빅슬립〉의 '기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길거리를 떠도는 십 대 청소년 '길호'에게 크게 의심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데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선뜻 말을 걸어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어느 한파도 무섭지 않게 됩니다. 문득 손을 내밀고, 그 손을 덥석 잡은 이들이 서로 함께 펼쳐나가는 아프고도 신기한 일들이 〈부모 바보〉와 〈빅슬립〉에 나와있어요.

〈부모 바보〉와 닮은 꼴 영화로 〈괴인〉을 소개합니다. 물론 두 영화 각각은 제 나름의 색이 뚜렷해서 완전히 '똑 닮았다' 말할 수는 없지만요. 〈부모 바보〉 속 독특한 구성과 앞으로의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괴인〉이 저절로 생각나기 마련입니다. 다른 상업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맛을 찾아서 우리는 독립영화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곤 하는데요, 아는 맛이 더 맛있는 것처럼..😋 익숙하지만 어색한, 그 자체로 생경한 매력이 더 가까이 다가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