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우리의 인사는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나죠. '밥은 먹었니?'로 묻기 시작한 안부부터 '다음에 밥 한번 먹자'로 끝나는 작별 인사까지요. 🍚🧐 대체 한국인의 길고 긴 역사에서 밥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싶지만요, 뭐니 뭐니 해도 잘 먹어야 하루를 잘 버티고, 또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는 법!

다큐멘터리 〈정돌이〉는 우연히 먹은 밥 한 끼가 어떻게 사람을, 학교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어릴 적 가정 폭력을 피해 거리를 떠돌던 소년은 우연히 한 청년을 만나 따끈한 밥을 얻어먹게 되어요. 청년은 더 나아가 소년을 고려대로 데려가며 많은 학우들에게 소개하죠. 와중 오갈 데 없던 소년에게 고대의 수많은 학우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되어요. 소년은 정경대 마스코트라는 별명 - '정돌이'라 불리게 되며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고려대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정돌이〉는 '송귀철'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송귀철 씨는 고대에 머물며 배웠던 장구와 풍물 실력을 바탕으로 어엿한 풍물패 '미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어요. 영화는 그가 고려대의 안팎에서 함께 살았던, 또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오늘 먹은 아침이나 점심이 그저 한 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요, 사실은 끼니가 쌓이고 쌓여 나의 몸과 나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요. 그처럼 우리가 타인에게 베푸는 작은 호의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모두의 삶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이처럼 작은 마음들이 모여 큰 감흥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님의 3월도 이렇게 따뜻하고 든든하기를 바라요 💘

 

벨트슈메르츠(der Weltschmerz). Welt(세계, 세상)과 Schmerz(고통)을 합친 독일어 단어이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세상의 고통’ 정도가 된다. 현실의 폭력, 부조리, 불합리 앞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통과 우울. 다시 말해 세계의 폭력에 ‘무력하게’ 휘둘릴 때 느끼는 좌절감을 뜻한다. 이 단어를 처음 봤을 때 이런 질문이 따라붙었다. 그렇다면 세계의 ‘횡포’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오래전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났다. 1987년 고려대 캠퍼스에 흘러 들어온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돌이〉다. (중략)
〈정돌이〉는 타인과 나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던 소년이 운동권 학생들과 함께하게 됐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훗날 장구 명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영화에서 송귀철 씨는 사회운동과 장구 연주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투쟁과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연주에서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중략)

인디즈 이지원

 

모든 인간은 각자의 투쟁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투쟁도 사소하다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시대의 아픔이 개인의 삶과 마찰할 때 생기는 파열음은 유달리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정돌이〉와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시대가 부여한 과업을 지고 살아간 개인들의 부단함과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조명한 작업이다. (중략)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재연을 사용한다는 면에서 〈정돌이〉와 형식적으로 유사한데, 과거와 연결된 이들을 재연의 주체로 설정하여 현재와 과거의 화해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일본 오사카 방직공장에 취직한 조선인 여공들의 열악한 상황을 세분화하여 묘사하면서도 그들의 아픔을 비단 참혹함만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멸시받는 와중에도 호르몬을 먹으며 끈질기게 삶을 이어갔고,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기도 하며 당당히 외국 역사의 일부를 차지한 여공들의 삶을 재구성하여 기억하고자 한다. 
우리는 종종 과거를 잊어버린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에는 반드시 과거로부터 쌓여온 것들이 지층처럼 남아있다.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과거의 얼굴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디즈 김민지

낯선 이의 도움을 받는 일은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매달리기〉의 영선의 입에서는 도움을 청하고자 하는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아요. 어쩌면 거절당할 것을 짐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영선은 정돌이처럼 다시 일어나기를 선택해요. '낙관을 놓지 않으려는 악력'을 일찍이 기른 영선의 이야기 〈매달리기〉는 3월 15일까지 인디그라운드 온라인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미리 영화를 관람한 인디즈의 리뷰도 함께 소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