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따스한 걸 보니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 왔습니다. 길가의 꽃과 나무들은 싹을 틔울 준비를 마쳤고요.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은 어느덧 수업에 적응한 듯 보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빨리 다가오는 봄을 속수무책으로 맞이하자니 왠지 버겁기도 하고, 때로는 설레기도 한 마음이에요.

최승자 시인은 「삼십 세」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봄도 마찬가지일까요. 겨울잠에서 깨어나기엔 너무 귀찮은 마음인데, 그렇다고 누워만 있기에는 남모를 눈치가 보이는 시간···.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나에게 어느새 다가온 봄 햇살이 얼른 일어나라고, 신년에 세웠던 계획들을 이뤄낼 궁리를 하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의 인디즈 큐는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영화들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한 것들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힘이 필요하겠지요. 봄을 기다리며, 봄을 맞이하며, 봄을 지나며 보는 영화들은 내게 어떤 새싹들을 선물해 줄까요. 각기 다른 선명함을 가진 오늘의 영화들이 님의 봄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기를 소망합니다. 🌞

겨우내 지쳐있던 마음, 새로 돌볼 수 있는 적당한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3월의 중순이야말로 분명한 '힘을 낼 시간'이지요. 남궁선 감독의 영화 〈힘을 낼 시간〉은 나의 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료들이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이번 3월 22일 토요일에는 인디스페이스에서 라스트 인디토크가 열린다고 합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오래 나눌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 꼬옥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

〈힘을 낼 시간〉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 치열하게 앞을 향해 가고 있는데 정작 나는 제자리에 멈춰있기만 혹은 어딘가 홀로 뒤처져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그렇게 거대한 무기력함은 한순간에 우리를 덮쳐온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앞만 보며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럴 필요 또한 없다. 어쩌면 지금 내가 남들보다 느린 이유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략)

〈힘을 낼 시간〉의 수민(최성은), 태희(현우석), 사랑(하서윤)은 소위 말하는 실패한 아이돌이다. 이들은 학창 시절 가지 못했던 수학여행을 늦게나마 떠나보기로 한다. 하지만 사랑이 버스에 캐리어를 두고 내리는 바람에 여행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가지고 있던 돈 마저 전부 잃게 되면서 무작정 귤 따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 같지 않은 여행을 이어간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들의 첫 여행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채로 흘러가기만 한다. (중략)

“오는 길과 가는 길은 다르니 조금 헤매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힘을 낼 시간〉 속 내레이션이 영화가 끝나고도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불안해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듣고 싶은 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잠시 길을 잃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 말이다.

인디즈 서민서

저에게는 봄이 유독 특별한 때입니다. 겨울이었다면 너무 추워서 상상도 못 했을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에요. 올해는 자전거를 자주 타보려고 따릉이 정기권도 당차게(!) 끊어보았고요, 웬만한 가까운 거리는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 다녀보려고 다짐했답니다. 🚲 🚶

하지만 나에게 괜히 새롭게 보이는 한때가 누구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일 수도 있지요. 최승연 감독의 영화 〈스프린터〉는 0.01초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매일의 루틴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땀방울을 담고 있어요. 성공과 실패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겹쳐있어서 온 세상이 회색빛으로 보이긴 하지만요,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이 봄, 〈스프린터〉는 님께 튼튼한 팔과 다리가 되어줄 것만 같아요. 

(중략) 매번 출발이 아니라 도망치는 기분에 휩싸이면서도, 계속해서 달리는 이유는 어쩌면 하나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바로 루틴이다. 영화는 30대 현수(박성일)를 통해 보여준다. 현수는, 마치 나무 깎는 노인이 칼을 갈듯 달린다. 그를 둘러싼 해와 구름과 군중이 지나가고, 심지어 본인 속에서 세월이 지나가도 그는 묵묵히 자기가 만든 루틴을 수행한다. 현수가 만든 루틴은 치열하게 세공된 그만의 세계다. 현수뿐 아니라 정호(송덕호)와 준서(임지호)에게도. 남들이 루틴이라고 부르는 각자의 세공된 세계가 있다. 평생 나무를 깎게 되듯이, 너무 치밀하게 세공된 세계에서는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중략)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 떠오르는 구성 방식의 이 영화에서 나는 어쩌면 비슷한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극장을 나서면 내 옆을 스쳐 가는 사람을 괜스레 돌아보게 되는, 천차만별의 일률적인 세계를 목격한다. 누군가의 일상적 여백에 내가 켜켜이 쌓인다. 당신의 고통 한 줄에 어쩌면 나도 거닐었을지 모른다. 나의 세계에, 당신도 살아가고 있다. 트랙을 한 번 더 달릴 힘이 생긴다.

인디즈 안민정

3월, 새 학기가 무르익는 때입니다. 신승은 감독의 〈프론트맨〉은 국악고등학교에서 함께 아쟁을 전공하는 두 친구 채민과 선화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같은 목표를 향해 오늘도 학기 중을 지나는 친구들 사이지만요, 학교의 누군가는 잔인한 등수를 매기고 누군가는 앞에 설 '프론트 맨'을 정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많아 남학생들이 기를 못 편다면서, 남학생에게 자리를 내어주자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채민과 선화는 무사히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

이나연 감독의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우리 앞에 놓일 봄을 기다리는 영화입니다. 엄마 없는 엄마 집에서 엄마 없이 남겨진(!) 세 남매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김장을 해요. 세 남매와 엄마의 역사가 담긴 조용한 집에서 셋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죠. 각자가 집에서 떠올린 엄마에 대한 기억을 살피던 와중, 갑자기 영문 모를 택배가 도착하게 됩니다.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겁니다. 봄이 되면 하고 싶은 것, 봄이 되면 만나고 싶은 사람들, 봄이 되면 가고 싶은 곳들이 마구마구 떠오를 거예요. 그저 오늘 하루를 따스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완연한 날들이 도착해있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