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명> (감독 이원영)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 319 〈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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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오늘의 큐 💡
Q. 계엄 선포 다음 날, 아내와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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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장맛비가 끊이지 않고 내리고 있어요. 뉴스를 켤 때마다 들려오는 도로 침수와 교통사고, 산사태 소식에 걱정도 끊이지 않습니다. 모쪼록 여러분 각자 계신 곳에는 큰 비 피해가 없기를 바라요.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이원영 감독의 〈미명〉입니다. 작을 미(微), 밝을 명(明)으로 '희미하게 밝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요. 빛에 관한 영화인가 싶지만, 〈미명〉은 목소리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다음 날에 남자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게 됩니다. 깊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목소리마저 잃어버리지요. 목소리를 되찾아야만 다시 강단에 설 수 있고, 아내 없이도 홀로 살아갈 방법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을 텐데요. 그렇게 커다란 슬픔을 그대로 통과하던 남자에게 어느 날 눈에 보이지 않는 혼령의 모습으로 아내가 찾아옵니다.
한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 〈미명〉은 우리가 살아가며 감당해야 하는 아픔과 동시에 희미하게 스며드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극 중 부부로 호흡을 맞춘 이원영-임정은 배우는 실제 부부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화목한영화사' 안에서 〈미명〉을 비롯한 여러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해왔지요. 비가 멈출 줄 모르고 내리는 요즘 같은 때에 우리의 마음을 톡톡 두드려 줄 〈미명〉과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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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명〉 리뷰|어긋나서 다행이야
2. 〈봄밤〉 과 함께|끝내 찾아올 미명
3. 감독과 함께 하는 인디토크 소식
4. 이웃들 소식|이원영 감독의 전작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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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나서 다행이야
〈미명〉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이 목소리까지 잃는다. 그런 이야기를 가진 영화를 두고 감독은 ‘코미디’라고 소개했다. 그저 인터뷰의 한 구절이라 보기엔 예상을 많이 빗나간 표현이다. 이런 식의 어긋남에 주목하지 않고는 〈미명〉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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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어긋남
줄곧 어긋나는 영화다. 부부의 소박한 하루 사이로 12.3 비상계엄을 보도하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아내가 차려준 생일상을 먹고 나자 곧이어 아내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기대하지 않은 비극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남편은 일상과 어긋나기 시작한다.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의 형식 역시 미묘하게 뒤틀려 있다. 인물이 카메라 앞에 등장하면 조명이 흐트러진다. 연기는 어색하고, 화면과 구도는 서툴다. 단순히 제작자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보기엔 (실제 부부이자 등장인물이기도 한) 이원영 감독과 임정은 프로듀서는 여러 작품으로 합을 맞춰왔다. 의도적으로 영화의 완성도에 금을 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전형적인 이야기를 다룰 때, 그래서 내용의 힘이 부족할 때, 예술은 형식으로 내용을 도울 수 있다. 〈미명〉 역시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뻔한 플롯으로 시작한 탓에, 투박한 프로덕션으로 매력을 보완한다. 아내와 목소리를 잃은 남편과, 매끄러운 만듦새를 잃은 영화가 만난다. 무언가 잃어버려 일상적이지 않다는 공통점 하에 남편과 영화는 한 팀이 되어 다음을 모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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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어긋남
어긋난 세계 앞에서 다음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미명〉은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추길 권하지 않는다. 대신 형체를 바꾸길 제안한다. 먼저 남편의 목소리는 타이핑된 텍스트로 변신한다. 그러다 유리창에 비친 빛으로 찾아온 아내에게 닿기 위해 TTS(텍스트 음성 변환) 음성이 된다. 몽골로 건너가 ‘흐미’라는 창법을 배워 한 번에 두 가지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영화 역시 그런 남편에게 맞춰 종횡비를 주무르기도 하고 초점을 잃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건 다시 태어나는 영화다. 모든 걸 잃고 난 후에 새로운 몸과 가능성을 얻는 희미한 빛을 그리는 영화다. 다만 다시 태어난다는 건 이전과 같아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남편의 끝이 죽음인 건 이해가 된다. 생일상과 사망 소식이 한 몸처럼 이어지던 것과 같은 흐름이지만 다른 모습이다. 엉엉 울던 남편과 달리 눈을 감은 남편은 평온하다. 여러 형체(텍스트, TTS 음성, 유리창의 빛, 흐미)로 어긋나 찢겨 있던 그의 존재는, 죽음으로써 육체의 한계를 넘어 아내와 만날 수 있는 경지이자 진정한 자유에 다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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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어긋남
죽음이 주는 새로운 빛은 계속된다. 메시지가 뚜렷한 영화가 아니고,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그 덕에 아내와 남편이 자녀 계획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마지막 장면이 유독 눈에 띈다. 어두운 세상에 아이를 낳는 건 이기적이라는 남편과 그래도 사랑하니까 낳는 거라는 아내의 대화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을 밀어붙이는 대목이다.
〈미명〉이 꼭 보여주려는 마지막 어긋남이 여기에 있다고 봤다. 앞서 썼듯, 이 영화는 다시 태어나고 죽으면서 빛을 찾는 영화다. 태어남과 죽음을 마구 뒤섞는 영화다. 그렇다면 태어나지 않으면서 무언가 태어난다고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부부의 논쟁으로 아이가 태어나려다 태어나지 못하는 동안, 카메라는 내내 환하게 빛나는 부부의 결혼기념일 축하 조명만을 바라본다. 그 빛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음으로써 태어나는 희망으로 보인다. 논쟁의 시작이 남편이 동료 장례식에서 본 아버지를 잃은 아이임을 고려하면 더욱이 그렇다. 목소리를 잃은 덕에 모든 것이 되어본 남편의 음성과, 매끄럽지 않아 어느 형식이든 자연스럽게 담아본 영화가, 이제는 태어나지 않아 모든 몸으로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는 희망을 낳기로 한 듯하다.
그것이 삶 자체를 비관하는 냉소로 읽히진 않는다. 다소 예상외의 방식으로 부부를 추모할 뿐이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덕에 부부는 걱정 없이 둘만의 영면에 이를 수 있지 않느냐고. 관객이 마지막에 보는 장면이 홀로 남은 아이가 아니라 눈부신 조명일 수 있지 않느냐고. 아내의 죽음으로 시작해 남편의 죽음, 아이의 (태어나지 않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것이 희망의 탄생이라고 말하는 엉뚱함이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어긋난 덕에 비치는 빛을 포착해 온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가벼운 위로다.
〈미명〉은 슬퍼해야 할 순간에 다시 태어나버리고 회복해야 할 순간엔 죽어버리더니 끝내 태어나지 않으면서 무언가 낳는다. 보란 듯이 어긋나는 순간들의 반복. 일상을 가르는 비극 앞에 영화가 던질 수 있는 그야말로 최고의 코미디적 맞수다.
인디즈 강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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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
감독 이원영
출연 이원영, 임정은, 손승범
64분|극영화|2026
몽골 역사를 연구하는 남자는 아내와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다음 날,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 그 충격으로 목소리마저 잃게 된다. 어느 날 아내는 혼령이 되어 남자를 찾아오고, 남자는 그녀와 대화하기 위해 다시 목소리를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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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찾아올 미명
〈미명〉 그리고 〈봄밤〉
밤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어떤 밤은 해가 뜨면 끝나지만, 어떤 밤은 한 사람의 삶에 오래 머문다. 우리는 흔히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좀처럼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떤 영화들은 상실을 하나의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시간을,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미명〉과 〈봄밤〉은 서로 다른 상실을 이야기하지만, 끝내 밤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조용히 기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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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목소리마저 잃어버린 남자의 시간을 따라간다. 영화는 상실을 거대한 비극으로 설명하기보다, 말을 잃은 한 사람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을 소리와 침묵으로 들려준다. 화면보다 귀를 먼저 열게 만드는 영화의 리듬 속에서 목소리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기억을 붙들고 삶을 이어가는 감각이 된다. 흐미의 울림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사람이 머물러 있는 과거를 현재의 시간으로 불러온다. 영화가 끝내 되찾으려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상실을 안은 채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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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간은 〈봄밤〉에서도 이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 오래된 결핍을 품고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를 구원하지도, 상처를 말끔히 치유하지도 못한다. 오래 술을 참아온 연인을 향해 "오늘은 괜찮다"며 술을 마시러 보내는 선택은 얼핏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그 장면을 통해 사랑이란 상대를 내 방식대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결핍마저 그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일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다만, 상대의 결핍을 외면하지 않은 채로 서로를 마주한다. 영화는 그 잠시의 동행만으로도 사랑은 계속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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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과 〈봄밤〉은 모두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은 누군가를 온전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되려 그들을 상실의 순간으로 몰아넣는 존재이기도 하다. 부재와 결핍이라는 서로 다른 얼굴의 상실은 결국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한다. 사랑은 상처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상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곁에 머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저마다의 긴 밤을 지난다. 어떤 밤은 누구를 잃어서 시작되고, 어떤 밤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 결핍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목소리를 내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미명은 밤이 끝났다는 증거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기어코 찾아낸 가장 희미하고도 가장 밝은 빛일지도 모른다. 〈봄밤〉의 인물들 역시 그 빛을 재촉하지 않는다. 서로의 밤을 대신 끝내주려 하기보다, 그저 갈 수 있는 곳까지 곁을 지킬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긴 밤을 동행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상대를 한낮으로 데려가는 일이 아니라, 그의 밤에도 끝내 미명이 찾아오리라 믿고 밤을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디즈 정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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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감독 강미자
출연 한예리, 김설진
67분|극영화|2025
국어교사였던 ‘영경’과 철공소를 운영하던 ‘수환’. 각자의 첫 결혼을 파혼한 뒤, 알코올과 병으로 모든 것을 잃고 죽음과 마주한 시간을 지낸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어느 새 서로의 상처를 응시하며 그저 함께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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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모레, 금요일 오후! 인디스페이스에서 〈미명〉의 GV가 열립니다. 영화를 연출한 이원영 감독은 물론 김병규 영화평론가, 그리고 〈공원에서〉를 연출한 손구용 감독과 함께 〈미명〉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어쩌면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64분..) 만큼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번 인디토크에 참여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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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이 주는 알쏭달쏭한 매력에 푹 빠졌다면, 이제는 이원영 감독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시간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원영 감독은 〈미명〉에도 역시 출연한 임정은 감독과 함께 오랜 시간 「화목한영화사」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 왔어요. 현실에 기반하면서도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들을 제작해왔던 「화목한영화사」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인디즈 큐의 이웃이기도 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준비한 기획전을 소개해 드려요.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화목한영화사」의 경우' 프로그램은 8월 4일 화요일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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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 소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7월 21일(화)부터 8월 4일(화)까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화목한영화사」의 경우”를 진행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화목한영화사」가 제작한 네 편의 영화 〈아워 미드나잇〉(임정은, 2021), 〈희망의 요소〉(이원영, 2021), 〈절망의 요소〉(이원영, 2023), 〈미명〉(이원영, 2025)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19년에 설립된 「화목한영화사」는 창작자의 고유한 시선과 삶의 이면을 담아내며 작가주의 독립예술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온 제작사입니다. 2017년에 장편 데뷔한 이원영 감독은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를 하나씩 덜어내며 영화를 성립시키는 최소한의 조건을 꾸준히 탐구해 왔습니다. 신작 〈미명〉은 프로덕션 규모를 최소화해 동료이자 아내인 임정은 감독과 단둘이 완성한 작품입니다. 「화목한영화사」의 첫 작품 〈아워 미드나잇〉으로 데뷔한 임정은 감독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이를 자유롭게 변용하는 영화를 지향합니다. 비슷한 영화 미학을 공유하는 두 감독은 서로 스탭으로 참여하고 같은 배우를 ‘공유’하면서 함께 영화를 만드는 독립적인 제작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 상영작 목록
〈아워 미드나잇〉 임정은|2020|78min
〈희망의 요소〉 이원영|2021|83min
〈절망의 요소〉 이원영|2023|75min
🗓️ 상영 일정
7.28(화) 18:00 〈절망의 요소〉 20:00 〈미명〉
7.29(수) 15:00 〈희망의 요소〉 17:00 〈아워 미드나잇〉
8.4(화) 18:00 〈희망의 요소〉 20:00 〈절망의 요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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